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문단 편집) === 남성 황족 === *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아우구스투스의 조카)|마르켈루스]]''': 본명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 아우구스투스의 제위 계승권자이자 친조카, 사위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친누나 소(小) 옥타비아의 아들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아우구스투스의 2인자 [[아그리파]]와는 미묘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황태자. 아우구스투스의 외동딸 대 율리아가 아그리파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 번째 아들이었다. * '''[[루키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제위 계승권자. 아우구스투스의 외동딸 대 율리아가 아그리파와의 사이에서 낳은 두 번째 아들이었다. * '''[[네로 클라우디우스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 통칭 '''드루수스, 대(大) 드루수스, 네로 드루수스'''.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한 가계가 티베리우스 이후 이어진 아우구스투스 직계 혈통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드루실라가 전 남편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사이에서 낳은 둘째 아들로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친동생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우구스투스의 친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로마인 대부분은 이를 사실로 여겼다.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소 옥타비아의 사위였으며, 황태자였던 게르마니쿠스와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아버지, 제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의 할아버지, 제5대 황제 네로의 외증조 할아버지였다. * '''[[게르마니쿠스]]''': 대(大) 드루수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의 양자이자 황태자. 아우구스투스의 외외종손이며 황후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손자이다. 아우구스투스 생전에 큰아버지 티베리우스가 공식적으로 양자 입적 후 황태자가 되자,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불과 18세의 나이에 차차기 황제로 내정되었다. 제3대 황제 가이우스(칼리굴라)와 제5대 황제 네로의 어머니 소 아그리피나의 아버지였으며, 제5대 황제 네로의 외할아버지였다. 아울러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형이었다. *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통칭 '''소(小) 드루수스'''.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친아들이자 게르마니쿠스 사후 황태자가 된 사람이다. 혈연적으로 아우구스투스의 피가 한방울도 흐르지 않은 탓에 아우구스투스 생전에는 제위 계승 서열이 낮았지만, 아버지 티베리우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입적될 때 카이사르 가문에 자동적으로 함께 입적돼 아우구스투스 생전 당시부터 카이사르 집안 사람이 되었다. 건강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요절했는데, 훗날 아내 리빌라(대 드루수스와 소 안토니아의 딸)와 근위대장 세야누스의 공모로 독살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아그리파 포스투무스|마르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그리파 포스투무스]]''': 아우구스투스의 외동딸 대 율리아와 아그리파 부부가 낳은 다섯 자녀 중 막내이자 삼남이었다. 아그리파의 급사 이후 태어난 유복자로 두 형(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요절한 이후, 생전 부모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의 약속(가이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카이사르 외의 다른 남자아이는 입양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파기되고, 티베리우스가 공식 입양될 때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입양됐다. 하지만 황궁 안에서 망나니인 데다 잔인성과 폭력성 문제로 시작된 각종 문제 때문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모든 양자 관계가 파기되고 추방된 뒤, 외조부 사망 직후 아우구스투스와 티베리우스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다. * '''[[네로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와 대 아그리피나의 세 아들 중 장남이었다. 본명은 '''네로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였다.[* 제5대 황제 네로와는 풀네임이 다르다. 네로의 경우, 양자 입적 후 즉위 전 공식 풀네임이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드루수스 게르마니쿠스였다.] 제3대 황제 칼리굴라의 첫째 형이었으며 제5대 황제 네로의 외삼촌이었다. 고모부이자 삼촌, 장인인 소(小) 드루수스가 사망한 뒤 황태자가 되었지만, 어머니 대 아그리피나가 반역죄로 고발될 때 함께 엮여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풀려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뒤 자결했다. * '''[[드루수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와 대 아그리피나의 세 아들 중 차남이었다. 본명은 '''드루수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게르마니쿠스'''였다. 제3대 황제 칼리굴라의 둘째 형이었으며 제5대 황제 네로의 외삼촌이었다. 어머니와 형이 간신 세야누스에 의해 반역죄로 고발된 후 유배되자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원로원에 공식적으로 황태자로 소개되었다. 그러다가 세야누스의 유혹에 넘어가 불륜을 저지른 아내 아이밀리아 레피다가 세야누스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녀와 세야누스 일당으로부터 누명을 쓴 뒤, 황궁 지하실에 유폐되었다. 세야누스 몰락 직전, 티베리우스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석방령을 내렸지만, 풀려나지 못했다. 세야누스 몰락 후 소(小) 드루수스의 독살 등이 연이어 밝혀지면서 티베리우스의 무관심 속에 황궁 지하실에서 아사했다고 한다. [[타키투스]] 등이 전하는 이야기와 당시 정황에 따르면, 티베리우스는 드루수스 카이사르를 가둔 사실에 매우 후회하면서 그의 생사를 걱정했다고 한다. 따라서 공식 후계자였던 그가 굶어 죽은 채 발견되자, 원로원과 마찬가지로 무척 침통해 했다고 하며 그의 죽음 이후 티베리우스가 복수를 다짐하며 대대적인 공포정치를 시작되었다고 한다. * '''[[티베리우스 게멜루스|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네로 게멜루스]]''': 통칭 '''티베리우스 게멜루스'''.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의 친손자였다. 제3대 황제 칼리굴라의 사촌 동생이자 양자였으며, 공동 제위 계승권자였다. 소(小) 드루수스와 리빌라의 쌍둥이 아들 중 살아남은 아들이었다. 어머니 리빌라가 세야누스와 공모해 아버지를 독살했음이 밝혀진 뒤, 정통성에 타격을 받았다. 티베리우스 생전부터 공동 제위 계승권자였지만, 티베리우스와 관계가 험악했던 원로원의 무시로 황제가 되지 못했다. 사촌 형 칼리굴라가 건강하던 시절, 공식적으로 사촌 형의 양자이자 황태자가 되었지만, 중병 이후 의심병이 생긴 칼리굴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 '''[[브리타니쿠스|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브리타니쿠스]]''': 통칭 '''[[브리타니쿠스]]'''. 제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 1세의 친아들로 부모 모두를 통해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은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정통 후계자였다. 그러나 아버지 클라우디우스 생전에 후계자로 공인받지 못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계모 소(小) 아그리피나의 친아들 네로에 비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황제가 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소(小) 아그리피나와 네로 사이에 권력 투쟁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불과 13세의 나이에 식사 자리에서 네로의 손에 의해 독살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